세상바라기

감독 : 찰스 샤이어
주연 : 쥬드로, 마리사 토메이, 수잔 서랜든, 시에나 밀러, 니아 롱, 제인 크라코우스키...

돈은 쓸 만큼만 있으면 된다. 주인공 '알피'는 관객에게 넉살 좋은 표정으로 자신의 인생철학을 늘어놓는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술과 여자다! 
 
한 번도 침대 정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주인공 알피는 늘 받는 것에 익숙하다. 그는 여자를 이용할 줄 알며, 그것을 선행이라고까지 여긴다. 이용당하는 여자가 이용당한다는 것을 모르게만 한다면 외려 행복감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피가 만나는 유부녀 '도리'는 남편과 6개월째 관계를 갖지 못했다. 알피는 자신이 그녀의 욕구 불만을 해소해 줌으로써 한 가정이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노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이 말이 관객에겐 꽤나 멋진 말처럼 들린다. 주인공의 세련된 외모와 거기에 곁들인 그 특유의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마음 한켠에 알피와 같은 허영심을 누구나 은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알피의 사고방식이 언제나 흔들림 없이 견고한 것은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 주인공 역시 복잡한 여자관계로 말미암아 여러번 위기에 처한다. 가정적인 편안함을 제공해줬던 여자 '줄리'에게 차였을 때는 그 충격으로 한 동안 남자구실을 하지 못했고, 이어 병원에서 진단 결과가 나올 동안 심한 마음고생을 겪기도 한다. 술 취해 친구(말론)의 여자친구(르네)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고고, 그로 말미암아 의도에도 없이 들어선 아이 때문에 친구의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특정 계기를 통해서만 주인공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의심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 비춰보면, 주인공은 다만 알고도 모른척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개 리무진 운전사에 불과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멋진 인생을 꿈꾸며, 야심찬 사업 계획도 가지고 있던 주인공 이었다. 말투 역시 일정 정도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그를 위해 매일 하나씩 달력에 적혀있는 어려운 단어를 외우기도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애정관이 질 낮은 바람기나 병적인 여성편력 정도로 비춰지길 바라지 않는 성격이다. 그렇게 일부러라도 삶에 자부심을 가지려는 주인공이 자진하여 스스로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의심하고 깎아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고방식 때문에 다른 사람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주인공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런 의심을 사실로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세련된 행동과 말투로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려 들었을 것이다.

 친구 '말론'의 여자친구인 '르넷'과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랬다. 주인공은 냉각기였던 친구와 그 여자친구의 사이가 자신 때문에 풀리게 된 것이라며 자기 행위를 포장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게 가장 쉽다'는 말로 자기의 위선적 태도를 비난했는데, 그런 행동들 하나 하나가 평소에 주인공이 얼마나 자기 삶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가 관객과 함께 공유해보고자 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속칭 '바람둥이'를 다뤘으면서도 그런 류의 영화가 흔히 받는 '남성우월주의'니 '마초주의'니 '남근주의'니 하는 비난들을 잘 피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는 바람둥이 주인공 쥬드로의 입을 통해 전개되면서도 여성과 남성의 심리 둘 다를 균형있게 다룬다. 특히 이 영화에는 여성을 쿠폰처럼 다뤄서 몇 명의 여자를 채우는가 따위 유치한 이야기가 없다. 바람둥이 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이야기, 그러니까 바람피우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런 이야기 전개가 아예 없다. 업치고 덥치고 꼬이는 관계에서 재미와 긴장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꽤나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고 깨닫길 바라는 사람들, 남성과 여성의 심리에서 어떤 공감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상당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는 인생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 두 가지를 준비하라고 권유한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 다른 하나는 매일을 마지막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다. 얼른 보면 영화가 미리 해답을 정해놓고 관객에게 우화처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마지막 장면에 가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는 오히려 행복이 생각한 것처럼 쉽게 쥐어지지 않는 것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바람기 때문에 숫한 사고를 당했으면서도 끝내 그런 태도를 털어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행복에 따로 정해져 있는 해답이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관객에게 말한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면 결국 불행한 것이다. 주인공은 약간은 회의적인 태도,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 보지만 그것을 크게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태도로 말했다. 그는 많은 남자들이 선망하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공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삶을 불행했다고 단정하진 않는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주인공의 모호한 표정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어떤 삶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걸까. 앞서 주인공의 고백처럼 자신을 속이는 게 가장 쉽다면, 우리는 언제든 행복을 꾸밀 수 있는 것 아닐까. 몇 번의 낭패 속에서 느낀 주인공의 참회도 결국 그 기간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마음고생으로 기억되는 것 아닐까. 여전히 바람둥이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주인공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것은 진정 '만족'일까, 아니면 자신을 속인 결과일까. 나 역시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일까, 아니면 만족하노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당신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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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채우기